한국 · 시험 대비1882년 – 1900년30건

개화와 근대 국가 수립 운동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독립 협회와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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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30건

  1. 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2. 임오군란 때 공사관이 불탄 일을 따져 일본이 배상금과 공사관 경비병 주둔을 받아 냈다.

  3. 임오군란 뒤 청이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한 무역 장정을 맺었다. 청 상인이 서울에 가게를 열고 내륙에서도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

  4. 일본인이 몰래 들어와 나무를 베어 가자, 조선 정부는 이규원을 검찰사로 보내 섬을 살핀 뒤 사람을 살게 하는 개척을 결정했다.

  5.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끝났다.

  6. 1885년 – 1887년거문도 사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며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했다. 청의 중재로 2년 만에 물러났다.

  7.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8. 1889년방곡령

    일본 상인이 곡식을 마구 사 가 곡물값이 치솟자,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곡식을 다른 곳으로 내가지 못하게 했다. 일본의 항의로 거두고 배상금을 물었다.

  9. 1892년 – 1893년동학 교조 신원 운동

    동학교도들이 처형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을 인정해 달라며 공주·삼례 집회, 복합 상소, 보은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었다.

  10.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전봉준이 농민을 이끌고 관아를 점령했다. 만석보를 허물고 빼앗긴 곡식을 나누었다.

  11.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일어났다.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12.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청에 군대를 청했고,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두 나라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농민군은 정부와 화약을 맺고 물러났다.

  13. 1894년 – 1896년갑오개혁

    군국기무처를 세우고 신분제와 과거제를 없애는 등 정치·사회 전반을 고쳤다. 일본의 간섭 아래 김홍집 내각이 이끌었다.

  14. 1894년 – 1895년청일 전쟁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싸웠다. 풍도·성환·평양·황해에서 이긴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조선 종주권을 끊고 타이완을 얻었다.

  15.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난 남접·북접 연합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크게 졌다. 전봉준은 순창에서 붙잡혔다.

  16. 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개혁의 기본 방향을 담은 홍범 14조를 선포했다. 2차 갑오개혁의 강령이다.

  17. 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보낸 낭인과 군인이 경복궁 건청궁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18. 1895년 – 1896년을미개혁과 단발령

    을미사변 뒤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태양력 사용, 건양 연호, 종두법, 소학교 설립과 함께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19. 1895년 – 1896년23부제와 13도제

    2차 갑오개혁 때 8도를 없애고 전국을 23부로 나누었다가, 아관파천 뒤 다시 13도로 고쳤다. 13도는 오늘의 도 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20. 1895년 – 1896년을미의병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인석·이소응 등 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 아관파천 뒤 고종이 해산을 권하자 대부분 흩어졌다.

  21. 1896년 – 1897년아관파천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1년 동안 머물며 친러 내각을 세웠다.

  22. 1896년 – 1898년독립 협회

    서재필이 정부 관료·지식인과 함께 독립 협회를 만들었다.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외쳤다.

  23.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에 올라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정했다.

  24. 1897년 – 1904년광무개혁

    대한제국이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구본신참)"는 원칙으로 황제권을 강화하고 양전·지계 발급, 상공업 진흥, 근대 시설 도입을 추진했다.

  25. 독립 협회가 종로에서 처음 민중 대회를 열어 러시아의 군사 교관·재정 고문 철수와 절영도 조차 반대를 외쳤다.

  26. 정부 대신과 민중이 함께 모인 관민 공동회가 헌의 6조를 결의했다. 고종이 받아들여 중추원 관제를 고쳤으나, 곧 독립 협회가 해산되었다.

  27. 대한제국이 양지아문을 두어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고, 지계아문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 증서인 지계를 발급했다.

  28. 서울 시전 상인들이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해 외국 상인의 도성 안 상업 활동을 막고 상권을 지키려 했다.

  29. 대한제국이 9조의 국제(나라의 기본법)를 반포했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한 제국이며 황제가 무한한 군권을 가진 전제 정치의 나라임을 밝혔다.

  30. 대한제국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높이고, 군수가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독도)를 다스린다고 관보에 밝혔다.

주요 인물

  • 고종1852년 – 1919년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첫 황제

  • 김홍집1842년 – 1896년

    갑오개혁을 이끈 총리대신. 아관파천 뒤 군중에게 죽었다

  • 박영효1861년 – 1939년

    철종의 사위인 급진 개화파. 김옥균과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2차 갑오개혁 때 김홍집과 연립 내각을 이끌었다

  • 전봉준1855년 – 1895년

    동학 농민군을 이끈 지도자. 녹두장군으로 불렸다

  • 서재필1864년 – 1951년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돌아와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협회를 이끌었다

  • 명성황후1851년 – 1895년

    고종의 왕비. 일본 세력을 견제하다 을미사변으로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 리훙장1823년 – 1901년

    청의 북양 대신. 임오군란 뒤 조선 정책을 주도했고 이토 히로부미와 톈진 조약,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다

  • 김옥균1851년 – 1894년

    급진 개화파.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일본으로 망명했고, 상하이에서 암살되었다

  • 유길준1856년 – 1914년

    조사 시찰단·보빙사를 따라가 일본·미국에서 공부했다. 서양 견문을 적은 "서유견문"을 쓰고 갑오·을미개혁에 참여했다

  • 최시형1827년 – 1898년

    동학 제2대 교주. 교단을 정비하고 『동경대전』·『용담유사』를 펴냈으며, 2차 봉기 때 북접을 일으켜 남접과 합쳤다

  • 손병희1861년 – 1922년

    동학 제3대 교주, 천도교를 세웠다.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의 대표

  • 흥선대원군1820년 – 1898년

    고종의 아버지. 섭정으로 경복궁을 다시 짓고 통상 수교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