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와 근대 국가 수립 운동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독립 협회와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독립 협회와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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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급료에 분노한 구식 군대가 들고일어나 일본 공사관을 공격했다. 흥선대원군이 잠시 다시 집권했으나 청군이 그를 붙잡아 갔다.
임오군란 때 공사관이 불탄 일을 따져 일본이 배상금과 공사관 경비병 주둔을 받아 냈다.
임오군란 뒤 청이 조선을 속방으로 명시한 무역 장정을 맺었다. 청 상인이 서울에 가게를 열고 내륙에서도 장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이 몰래 들어와 나무를 베어 가자, 조선 정부는 이규원을 검찰사로 보내 섬을 살핀 뒤 사람을 살게 하는 개척을 결정했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정변을 일으켰다. 청군이 개입해 사흘 만에 끝났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며 영국 해군이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했다. 청의 중재로 2년 만에 물러났다.
갑신정변 뒤 청의 리훙장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두 나라 군대가 조선에서 함께 물러나고, 앞으로 파병할 때 서로 미리 알리기로 약속했다.
일본 상인이 곡식을 마구 사 가 곡물값이 치솟자,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곡식을 다른 곳으로 내가지 못하게 했다. 일본의 항의로 거두고 배상금을 물었다.
동학교도들이 처형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을 인정해 달라며 공주·삼례 집회, 복합 상소, 보은 집회를 열었다. 보은 집회에서는 "척왜양창의"를 내걸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전봉준이 농민을 이끌고 관아를 점령했다. 만석보를 허물고 빼앗긴 곡식을 나누었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이 탐관오리와 외세에 맞서 일어났다. 청일 전쟁의 계기가 되었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정부는 청에 군대를 청했고, 일본도 군대를 보냈다. 두 나라 군대의 철수와 폐정 개혁을 조건으로 농민군은 정부와 화약을 맺고 물러났다.
군국기무처를 세우고 신분제와 과거제를 없애는 등 정치·사회 전반을 고쳤다. 일본의 간섭 아래 김홍집 내각이 이끌었다.
조선을 두고 청과 일본이 싸웠다. 풍도·성환·평양·황해에서 이긴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의 조선 종주권을 끊고 타이완을 얻었다.
일본을 몰아내려 다시 일어난 남접·북접 연합 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게 크게 졌다. 전봉준은 순창에서 붙잡혔다.
고종이 종묘에 나아가 개혁의 기본 방향을 담은 홍범 14조를 선포했다. 2차 갑오개혁의 강령이다.
1895년 음력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보낸 낭인과 군인이 경복궁 건청궁에 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을미사변 뒤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태양력 사용, 건양 연호, 종두법, 소학교 설립과 함께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을 내렸다.
2차 갑오개혁 때 8도를 없애고 전국을 23부로 나누었다가, 아관파천 뒤 다시 13도로 고쳤다. 13도는 오늘의 도 체제의 바탕이 되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인석·이소응 등 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 아관파천 뒤 고종이 해산을 권하자 대부분 흩어졌다.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1년 동안 머물며 친러 내각을 세웠다.
서재필이 정부 관료·지식인과 함께 독립 협회를 만들었다. 독립문을 세우고 만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외쳤다.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에 올라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정했다.
대한제국이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구본신참)"는 원칙으로 황제권을 강화하고 양전·지계 발급, 상공업 진흥, 근대 시설 도입을 추진했다.
독립 협회가 종로에서 처음 민중 대회를 열어 러시아의 군사 교관·재정 고문 철수와 절영도 조차 반대를 외쳤다.
정부 대신과 민중이 함께 모인 관민 공동회가 헌의 6조를 결의했다. 고종이 받아들여 중추원 관제를 고쳤으나, 곧 독립 협회가 해산되었다.
대한제국이 양지아문을 두어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고, 지계아문에서 근대적 토지 소유 증서인 지계를 발급했다.
서울 시전 상인들이 황국 중앙 총상회를 조직해 외국 상인의 도성 안 상업 활동을 막고 상권을 지키려 했다.
대한제국이 9조의 국제(나라의 기본법)를 반포했다. 대한제국이 자주독립한 제국이며 황제가 무한한 군권을 가진 전제 정치의 나라임을 밝혔다.
대한제국이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높이고, 군수가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독도)를 다스린다고 관보에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