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문화
의천과 지눌, 대장경과 금속 활자, 삼국사기·삼국유사, 청자, 불상·탑·목조 건축, 성리학의 전래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의천과 지눌, 대장경과 금속 활자, 삼국사기·삼국유사, 청자, 불상·탑·목조 건축, 성리학의 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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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 흐름 | 대표 문화유산 |
|---|---|---|
| 불교 통합 | 의천 — 교종 중심, 해동 천태종, 교관겸수 → 지눌 — 선종 중심, 수선사 결사, 정혜쌍수·돈오점수 | 송광사 |
| 대장경 | 초조대장경(거란 침입) → 교장(의천) → 재조대장경(몽골 침입, 대장도감) | 해인사 장경판전 |
| 인쇄 | 상정고금예문(1234, 기록만) → 직지심체요절(1377, 현존 최고 금속 활자본) | 청주 흥덕사 |
| 역사서 | 삼국사기(유교적 합리주의, 기전체) → 동명왕편·삼국유사·제왕운기(자주 의식, 단군) | — |
| 유학 | 최충의 9재 학당(사학 12도) → 관학 진흥(7재·양현고) → 성리학 전래(안향) | 안향 초상 |
| 자기 | 순청자(11세기) → 상감 청자(12세기 중엽) → 분청사기로 | 강진·부안 가마 |
| 건축 | 주심포 양식 → 고려 말 다포 양식 | 봉정사 극락전·부석사 무량수전·수덕사 대웅전 / 성불사 응진전 |
| 석탑 | 다각 다층탑 — 송의 영향 → 원의 영향 | 월정사 8각 9층 석탑 / 경천사지 10층 석탑 |
| 과학 | 사천대(서운관), 향약구급방, 화통도감(최무선) | — |
경기도 하남의 절터에 있던 높이 2.8m의 고려 초 철불.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었으며, 신라 말~고려 초에 유행한 철불의 대표다.
광종 때(962) 청주 용두사 앞에 쇠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 당간에 새긴 글에 광종의 독자적 연호 "준풍"이 남아 있다.
광종 때(968) 짓기 시작해 1006년 완성한 높이 18m의 거대 석불. "은진 미륵"으로 불리며, 고려 초 지방의 독특한 불상 양식을 대표한다.
오대산 월정사의 고려 전기 석탑. 8각 9층의 다각 다층탑으로, 송의 영향을 받아 고구려의 옛 땅인 북쪽 지역에서 유행한 고려 석탑의 대표다.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를 바라며 현종 때 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해 선종 때까지 완성했다. 몽골의 2차 침입 때 불탔다.
거란의 2차 침입 때 개경이 불타 사료가 사라지자, 현종 때부터 태조에서 목종까지 일곱 왕의 실록을 다시 엮어 덕종 때 완성했다.
고려는 천문 관측을 맡은 관청으로 사천대를 두었고, 뒤에 이를 태사국과 합쳐 서운관으로 삼았다.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신 흙으로 빚은 고려의 불상. 남아 있는 소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으며, 통일 신라 불상의 양식을 이었다.
문하시중에서 물러난 최충이 9재 학당을 열자 사학 12도가 번성했다. 관학이 위축되자 숙종·예종·인종이 관학을 다시 일으켰다.
송에서 돌아온 의천이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열어,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아우르려 했다.
고려는 11세기에 송 청자의 영향을 받아 맑은 푸른빛의 순청자를 구웠다. 12세기 전반에 "비색"이라 불릴 만큼 절정에 이르렀다.
큰 바위에 몸을 새기고 머리는 따로 만들어 얹은 고려의 거대 불상. "제비원 석불"로 불리며, 고려 시대 지방의 특색 있는 불상을 보여 준다.
고려는 하늘과 별에 복을 비는 도교 제사인 초제를 자주 지냈고, 예종은 도교 사원인 복원궁을 세웠다.
인종의 명으로 김부식 등이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삼국사기』 50권을 펴냈다. 오늘 전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역사서다.
고려는 11세기에 맑은 비색의 순청자를 구웠고, 12세기 중엽에는 무늬를 파낸 자리에 흰 흙·붉은 흙을 메워 굽는 독창적인 상감 청자를 만들었다.
청동 정병의 표면을 파고 은실을 박아 버드나무·갈대·물새가 있는 물가 풍경을 새긴 고려의 금속 공예품. 상감 청자와 같은 원리다.
지눌이 타락한 불교계를 비판하며 수선사 결사를 이끌었다. 정혜쌍수·돈오점수를 내세워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아우르는 조계종을 일으켰다.
이규보가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주몽)의 이야기를 장편 서사시로 읊었다.
옻칠한 바탕에 얇게 간 전복·조개 껍데기를 무늬대로 오려 붙인 공예. 고려의 나전 칠기는 섬세함으로 송 사신에게도 칭찬받았다.
지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1363년에 지붕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어 그보다 앞서 지은 고려의 주심포 양식 건물이다.
승려 각훈이 고종의 명을 받아 삼국 시대 고승들의 전기인 해동고승전을 지었다.
강화도로 옮긴 뒤 의례서 『상정고금예문』 28부를 금속 활자로 찍었다는 기록이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전한다. 책은 남아 있지 않다.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를 바라며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두고 16년 동안 대장경판 8만여 장을 새겼다. 지금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침입기에 대장도감에서 우리 땅의 약재로 급한 병을 다스리는 처방을 모은 향약구급방을 펴냈다. 지금 전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의서다.
승려 일연이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와 불교사, 민간 설화와 향가를 모아 『삼국유사』를 지었다. 원 간섭기에 우리 역사의 자주성을 내세운 책이다.
이승휴가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시로 읊은 『제왕운기』를 지어 충렬왕에게 바쳤다. 단군을 우리 역사의 시조로 삼았다.
충렬왕 때 안향이 원에서 성리학을 들여왔다. 이제현·이색을 거쳐 정몽주·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의 사상이 되었다.
1308년 지은 고려의 주심포 양식 건물. 지은 해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물가 바위에 앉은 관음보살을 그린 고려 불화. 화려한 색과 금가루, 비치는 얇은 베일의 섬세한 표현이 고려 불화의 특징이다.
원의 영향을 받은 대리석 10층 석탑이 개풍 경천사에 세워졌다. 조선 세조 때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고려 후기의 다포 양식 건물. 원에서 들어온 다포 양식은 조선의 궁궐·사찰의 큰 건물로 이어졌다.
공민왕과 노국 대장 공주의 쌍릉. 공민왕이 왕비의 무덤을 직접 꾸며 조성했고, 12지신 둘레돌과 문무인석이 조선 왕릉의 본보기가 되었다.
1376년에 고쳐 지은 고려의 주심포 양식 건물. 배흘림기둥과 팔작지붕으로 이름나고, 안에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모셨다.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을 금속 활자로 찍었다. 오늘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