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시험 대비350년 – 900년41건

고대의 경제·사회·문화

고분과 벽화, 불교의 수용과 원효·의상, 탑과 불상, 금관과 금동 대향로, 민정 문서, 역사서 편찬과 일본에 전한 문화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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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의 사건 41건

  1. 한성 백제의 왕릉급 무덤들. 고구려와 같은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어 백제 건국 세력이 고구려 계통임을 보여 준다.

  2. 근초고왕 때 박사 고흥이 백제의 역사를 적은 "서기"를 엮었다고 전한다.

  3. 침류왕이 동진에서 바닷길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맞아 불교를 받아들였다.

  4. 신라 최대의 고분. 남분과 북분이 붙은 쌍무덤(돌무지덧널무덤)으로, 북분에서 금관, 남분에서 서역 유리그릇이 나왔다.

  5.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말 탄 무사들이 몸을 돌려 활을 쏘며 호랑이와 사슴을 쫓는다 — 고구려 사람의 씩씩한 기상을 보여 준다.

  6.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지린성 지안)에 있는 계단식 돌무지무덤. 다듬은 화강암을 7층으로 쌓았고, 장수왕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7.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온 금관. 나뭇가지 모양(出 자 모양)과 사슴뿔 모양의 세움 장식에 굽은 옥과 달개를 달았다.

  8. 경주 계림로 무덤에서 나온 금 장식 단검. 금판에 석류석을 박은 서역 양식으로, 신라와 서역의 교류를 보여 준다.

  9. 1973년 발굴한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도 장니와 금관이 나왔다.

  10. 높은 가마에서 단단하게 구운 회청색 토기. 굽다리 접시·긴 목 항아리가 많고, 사람·동물 모양의 작은 흙 인형(토우)을 붙이기도 했다.

  11. 경주 천마총에서 나온 신라의 그림. 말다래(장니)에 하늘을 나는 흰 말을 그렸다 — 신라의 거의 유일한 회화 유물이다.

  12. 무령왕이 523년 죽자 525년 공주 송산리에 벽돌무덤을 만들어 묻었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로 발견되었다.

  13. 광배 뒷면에 "연가 7년 기미년"에 고구려 낙랑의 절에서 만들었다는 글이 있는 고구려 불상. 신라 땅이던 경남 의령에서 발견되었다.

  14. 진흥왕 때 이사부의 건의로 거칠부 등이 신라의 역사서 "국사"를 엮었다.

  15. 성왕이 노리사치계를 보내 왜에 불상과 경전을 전했다. 백제 문화는 일본 아스카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16.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나온 백제의 향로. 용이 받치고 봉황이 올라앉은 뚜껑에 신선 세계를 새겨 백제 공예의 정점을 보여 준다.

  17. 고구려 후기의 굴식 돌방무덤. 돌방 네 벽에 사신도(청룡·백호·주작·현무)를 그렸다.

  18. 한쪽 다리를 다른 다리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삼국 시대의 금동 보살상. 국보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19. 충남 서산의 바위에 새긴 백제의 불상. 가운데 여래의 넉넉하고 온화한 웃음 때문에 "백제의 미소"라 불린다.

  20. 영양왕 때 태학박사 이문진이 고구려 초기의 역사서 "유기" 100권을 줄여 "신집" 5권을 엮었다.

  21. 선덕여왕 때 경주에 돌을 쌓아 천문 관측대 첨성대를 세웠다.

  22. 선덕여왕 때(634) 분황사를 세우며 쌓은 탑.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 석탑으로,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23. 백제 무왕이 익산에 백제 최대의 절 미륵사를 세웠다. 서탑은 목탑 양식을 따른 가장 오래된 석탑 가운데 하나다.

  24. 선덕여왕이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에 높이 80m 에 이르는 9층 목탑을 세웠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가 지었다.

  25. 사비 도성 한가운데 정림사 터에 남은 백제의 석탑. 목탑의 짜임을 세련되게 돌로 옮긴 백제 석탑의 완성형이다.

  26. 부여 외리의 절터에서 나온 백제의 무늬 벽돌. 겹겹의 산과 소나무, 구름, 물가의 바위를 새겨 도교의 신선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27. 백제 의자왕 때 대좌평 사택지적이 늙어 감을 한탄하며 절을 짓고 세운 비석. 지금 남은 유일한 백제 비석이다.

  28. 원효가 일심·화쟁 사상을 펴고, "나무아미타불"만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아미타 신앙으로 불교를 백성에게 넓혔다.

  29. 당에서 화엄종을 배워 온 의상이 왕명을 받아 영주에 부석사를 세웠다. 부석사는 신라 화엄종의 중심이 되었다.

  30.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이 짓기 시작한 감은사를 완성했다. 이 무렵 동해의 용에게서 얻었다는 피리 만파식적 설화가 전한다.

  31. 신라 승려 혜초가 바닷길로 인도에 가 다섯 천축국과 서역을 돌아보고 당으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32.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불경 두루마리로, 지금 남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꼽힌다.

  33.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이 토함산에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기 시작했다. 통일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로 꼽힌다.

  34. 서원경(청주) 부근 네 마을의 인구·토지·가축·나무 수를 적은 장부. 촌주가 3년마다 고쳐 적었다.

  35.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려 만들기 시작한 큰 종을 혜공왕이 완성했다.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36. 문왕의 두 딸 정혜 공주(780년 장례)와 정효 공주(792년 장례)의 무덤. 고구려와 당의 문화를 함께 보여 준다.

  37.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발해의 불상. 고구려 불상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보아,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 주는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38. 아바스 왕조 시대 이슬람 상인들이 계절풍을 타고 페르시아만에서 인도·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광저우까지 오갔다. 이븐 쿠르다지바는 그 너머의 신라를 기록했다.

  39. 선종을 들여온 도의가 머문 진전사 터의 통일 신라 말 석탑. 기단에 팔부신중, 1층 몸돌에 불상을 새겨 이 시기 석탑의 장식 경향을 보여 준다.

  40. 선종 승려 철감선사 도윤의 사리를 모신 8각 원당형 승탑. 지붕돌의 기와골까지 새긴 정교한 조각으로 신라 승탑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41. 진성여왕의 명으로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이 향가를 모아 삼대목을 엮었다. 책은 전하지 않는다.

주요 인물

  • 선덕여왕647년

    신라 제27대 왕, 첫 여왕. 첨성대와 분황사,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다

  • 문무왕626년 – 681년

    신라 제30대 왕.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을 몰아내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동해 대왕암에 묻혔다고 전한다

  • 경덕왕765년

    통일 신라의 제35대 왕. 관직명과 지명을 한자식으로 고쳤으나 녹읍을 되살렸다. 불국사·석굴암이 이때 지어지기 시작했다

  • 근초고왕375년

    백제 제13대 왕. 마한을 통합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쳐 백제의 전성기를 열었다

  • 고흥

    백제 근초고왕 때의 박사. 백제의 역사서 『서기』를 엮었다고 전한다

  • 침류왕385년

    백제 제15대 왕. 동진에서 온 마라난타를 맞아 불교를 받아들였다

  • 장수왕394년 – 491년

    고구려 제20대 왕.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의 한성을 함락해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 무령왕462년 – 523년

    백제 제25대 왕. 22담로에 왕족을 보내 지방을 다스리고 백제를 다시 일으켰다

  • 진흥왕534년 – 576년

    신라 제24대 왕. 한강 유역과 대가야를 차지하고 순수비를 세웠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만들었다

  • 이사부

    신라의 장군. 나무 사자로 우산국을 항복시켰고, 진흥왕 때 대가야를 정벌했다

  • 거칠부

    신라 진흥왕 때의 대신·장군. 왕명으로 역사서 『국사』를 엮고, 551년 고구려의 한강 상류 10군을 차지했다

  • 성왕554년

    백제 제26대 왕.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으며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