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경제·사회·문화
과전법에서 직전법·관수관급제로, 공법, 훈민정음과 과학 기구, 농사직설·칠정산, 분청사기와 백자, 성리학과 서원
이 테마는 한국사의 흐름을 지도로 익히도록 돕는 참고용입니다. 시험 범위·출제 경향과 다를 수 있으니, 실제 시험 준비는 교과서와 검증된 교재로 해 주세요.
과전법에서 직전법·관수관급제로, 공법, 훈민정음과 과학 기구, 농사직설·칠정산, 분청사기와 백자, 성리학과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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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읍 한양에 법궁 경복궁을 지었다.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의 구절에서 따왔다.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 사당. 1395년 한양 천도와 함께 완공했고, 1995년 세계 유산이 되었다.
태조 때 고구려 천문도의 탁본을 바탕으로 별자리를 고쳐 돌에 새긴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다.
한양 도성의 정문(남대문). 1398년 완공한 다포 양식의 성문으로, 2008년 불에 탄 뒤 2013년 복구했다.
한양 천도 뒤 최고 교육 기관 성균관을 세웠다. 서울의 4부 학당, 지방의 향교와 함께 관학을 이루었고, 서당과 서원은 사학으로 교육을 맡았다.
태종이 사섬서를 두고 닥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 화폐인 저화를 만들어 쓰게 했다.
김사형·이무·이회가 원의 지도에 조선과 일본을 더해 세계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태종이 주자소를 두고 구리 활자 계미자를 만들었다. 조선에서 처음 만든 금속 활자다.
1405년 태종이 지은 이궁.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전각을 배치했고, 임진왜란 뒤 오랫동안 법궁 구실을 했다. 1997년 세계 유산이 되었다.
태종 때 태조실록을 엮으면서 왕이 죽으면 그 왕의 실록을 편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을 편년체로 적었다.
세종이 저화와 함께 쓸 동전 조선통보를 만들게 했으나, 쌀과 베에 밀려 널리 쓰이지 못했다.
세종이 각 도의 경험 많은 농부들에게 물어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펴냈다.
회색 흙에 흰 흙(백토)을 바르고 유약을 입혀 구운 자기. 고려 말 상감 청자에서 나와 15세기에 유행했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멋이 특징이다.
세종이 경복궁에 천문 관측대 간의대를 쌓고, 천체의 움직임을 재는 간의와 혼천의를 만들게 했다.
하늘을 우러르는 솥 모양의 해시계 앙부일구를 만들어 한양 길가에 두고 백성이 시각을 알게 했다.
세종이 이천·장영실 등에게 새 구리 활자 갑인자를 만들게 했다. 조선 활자 인쇄의 대표가 되었다.
장영실이 때가 되면 스스로 종·북·징을 울리는 물시계 자격루를 만들었다. 경복궁 보루각에 두고 나라의 표준 시계로 썼다.
빗물의 양을 재는 측우기를 만들어 서울과 각 고을에 두고 강우량을 기록하게 했다.
이순지·김담 등이 한양을 기준으로 해와 달, 다섯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한 역법서 『칠정산』 내·외편을 완성했다.
세종이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 그해 풍흉을 9등급으로 나누어 전세를 매기는 공법을 정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든 새 글자 훈민정음을 세상에 알렸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복숭아꽃 마을)을 안견이 사흘 만에 그렸다. 현실 세계에서 도원으로 이어지는 산수를 웅장하게 그린 조선 전기 산수화의 걸작이다.
선비가 바위에 엎드려 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강희안의 그림. 세상일을 잊고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닦는 선비의 모습을 담았다.
문종 때 정인지·김종서 등이 고려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고려사』를 완성했다. 이듬해 편년체의 고려사절요가 나왔다.
문종이 수레 위에 신기전·총통을 얹어 한꺼번에 쏘는 화차를 만들게 했다.
종묘에서 왕실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와 그때 연주하는 음악·노래·춤. 세종 때 지은 보태평·정대업을 세조 때 종묘 제례악으로 썼다.
세조가 관리에게 주는 수조권을 현직 관리에게만 주는 직전법을 실시했다. 과전법의 수신전·휼양전도 없앴다.
세조가 한양 한복판에 세운 원각사의 대리석 탑(1467). 고려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본떴으며,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드문 불교 문화유산이다.
성종이 관리가 직전에서 세를 직접 거두지 못하게 하고, 관청이 거두어 관리에게 나누어 주는 관수관급제를 실시했다.
흰 흙으로 빚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깨끗한 흰 자기. 검소함과 깨끗함을 중시한 사대부의 취향에 맞아 16세기부터 조선 도자기의 중심이 되었다.
성종의 명으로 노사신·서거정·양성지 등이 전국 군현의 연혁·산천·풍속·인물을 담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을 엮었다.
성종 때 서거정 등이 고조선부터 고려 말까지를 편년체로 정리한 통사 동국통감을 펴냈다.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조선 초기의 건물. 통풍과 습도 조절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로 1995년 세계 유산이 되었다.
풀과 꽃, 그 사이의 벌레를 섬세하게 그린 그림.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하며, 여성 화가의 섬세한 관찰과 채색을 보여 준다.
주세붕이 풍기에 첫 서원을 세웠다. 1550년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이름과 책을 받아 사액 서원의 시작이 되었다.
명종 때 나누어 줄 땅이 없어 직전 지급이 끊기고, 관리는 녹봉만 받게 되었다. 수조권을 나누어 주는 제도가 사라졌다.
명종 때 양주의 백정 출신 임꺽정이 황해도 구월산 일대를 근거로 관아와 창고를 털어 3년 넘게 활동하다 붙잡혔다.
이황이 열일곱 살에 즉위한 선조에게 성리학의 요점을 열 개의 그림으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올렸다.
이황이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그가 가르치던 도산 서당 뒤에 서원을 세웠고, 이듬해 선조가 "도산"이라는 현판을 내렸다(사액).
이이가 성리학의 요점과 제왕의 학문을 정리한 성학집요를 선조에게 올렸다.



관노 출신 과학자. 세종 때 자격루를 만들고 혼천의 같은 천문 기구 제작에 참여했다





